정자가 헤엄쳐서 난자를 향해 제대로 찾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중요한 ‘길잡이 분자’를 독일 연구팀이 찾아냈다.
독일의 유럽고등과학연구센터(Centre of Advanced European Studies, CAES)는 정자가 난자를 찾아가도록 안내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길잡이 분자’를 성게에서 발견했다고 최근 밝혔다. 연구팀은 분자생물학 분야에서 이뤄진 이번 발견이 인간 생식의 새로운 비밀을 밝혀내 남성 난임의 치료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100여 년 전, 미국 시카고대 해양생물연구소(MBL)의 동물학자 F.R. 릴리는 “난자와 정자의 결합은, 정자가 기계적 특성 덕분에 침투하는 과정이 아니라, 매우 ‘친밀하고 특수한 생화학적 반응’이 주된 역할을 하는 과정”이라고 논문에 썼다.
그런데 그로부터 1세기도 더 지난 지금, U. 벤자민 카우프 CAES 교수가 이 ‘친밀하고 특수한 생화학적 반응’이 실제로 어떻게 가능한지 확인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카우프 교수는 오래전 작고한 동물학자 릴리의 예전 연구소에서 약 20년 동안 봉직하며 해양생물의 생식을 연구한 경력을 갖고 있다.
1912년 정자와 난자의 생화학적 현상을 거론한 릴리는 이른바 ‘정자의 화학주성(chemotaxis, 주화성)’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최초의 과학자였다. 화학주성이란 정자세포가 난모세포에서 분비되는 화학적 자극물질에 의해 난자로 안내된다는 개념이다.
연구팀에 따르면 성게의 경우 ‘화학주성 인자’(chemoattractant, 자기를 향해 이동하게 하는 화학적 물질, 일명 ‘화학 유인물질’)는 바로 ‘리섹트’(resact)라고 부르는 펩타이드라는 사실이 수십 년 뒤 밝혀졌다. 이 물질은 난자에서 일단 분비되면 물속에서 널리 퍼지며, 농도를 변화시킨다. 성게 수컷이 물속으로 배출한 정자는 이 농도의 변화를 감지하고, 농도가 더 높은 화학물질을 향해 헤엄쳐 마침내 난모세포에 이를 수 있다. 이런 과정이 진행되는 데는 엄청난 양의 ‘리섹트’가 필요하지 않다.
앞서 연구팀은 수백억 개의 물 속 분자 중 화학주성 인자의 단일 분자만 있으면, 성게의 정자가 바짝 신경 써서 주의력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하지만 정자 세포들이 수정 목표물에 이르기 위해 자신들의 방향을 적절히 조절하는 방법을 안다는 것은 실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카우프 교수는 2015년 논문에서 “정자세포들은 화학적 농도의 변화에서 정보를 얻어 자신들이 헤엄쳐가고 있는 방향을 계산한다”고 밝혔다. 그는 “정자세포들은 일정 기간에 걸쳐 분자의 숫자를 세고, 이 정보를 취합한 뒤 자신들의 헤엄치는 경로를 바꾼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 결과 덕분에, 우리는 그 같은 즉각적인 방향 계산이 어떻게 가능한지 알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는 세포 간 수소이온농도(pH)의 변화가 정자의 신호에 중요한 요소라고 알려졌으나, 그 과정의 배후에 숨어있는 메커니즘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연구팀에 따르면 ‘리섹트’가 성게의 정자와 접촉할 때 ‘화학주성 인자’의 분자는 정자 편모(꼬리 부위)의 한 수용체와 결합한다. 그럼으로써 칼슘 이온이 정자 세포에 들어가는 일련의 신호 이벤트를 촉발시킨다.
이 같은 칼슘 반응은 정자 편모를 꿈틀거리게 해, 정자 꼬리가 선박의 방향키처럼 헤엄치는 방향을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게 한다. 또 농도가 더 높은 화학주성 인자를 향해 정자세포가 나아가게 하고, 결국 수정에 성공할 수 있게 돕는다.
연구팀은 이 칼슘 교환이 일어나게 해주는 분자는 바로 ‘SpSLC9C1’이라고 밝혔다. 이는 일종의 ‘계통 발생적 키메라’에 해당하며, 독특한 방법으로 나트륨 이온이 정자 세포에 흘러들어가게 할 수 있다. ‘SpSLC9C1’ 분자에서 이런 기능은 정자 세포 내의 알칼리도를 조절하고, 편모의 활동을 통제한다. 이 덕분에 우리는 요즘 많은 개체수의 성게를 볼 수 있다.
이 과정이 인간과 기타 포유동물의 정자 활동과 어느 정도까지 관련이 있는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그러나 카우프 교수는 “성게에서 알아낸 모든 정보가 생식 생물학 분야의 전반적인 지식을 넓히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정자의 기능을 정확히 파악하면, 난임을 일으키는 유전자 변이에 대해 심층 연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내용은 과학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Nature Communications)에 실렸다.
김영섭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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